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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

감각은 사실과 대립하지 않는다. 어떤 감각도 사실이 될 수 없으며, 사실은 전혀 감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각과 사실은 사실 서로 다른 질서에 속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사실의 질서는 실상 무질서에 가까운 것, 가까스로(만) 질서라 불릴 수 있는 것인 반면, 감각의 질서는 무한히 다양하고 상이한 질서들로 끊임없이 미분되지만 그와 동시에 거의 예외 없이 유행의 소실점으로 수렴된다. 따라서 감각의 지평(선)은 결코 정태적인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유일무이한 개성들과 요즘에는 소위 ‘대세’라는 말로 통칭되는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큰 흐름들 사이에서 요란하게 수축-팽창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존재론적 성격은 필시 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대개의 경우 긍정적인 의미에서 운위되는 ‘구체적인 감각’이란 말은 거의 기만이다. 감각은 결코 구체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표현은 사실(을 형성 또는 획책하는 권력)을 찬탈하려는 음모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음모는 편재한다. 이른바 ‘회의’가 진행되는 거의 모든 시공간에 출현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더 많이 팔(아 먹)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구체적인 감각’에 호소해야 하고,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누리꾼들의 ‘구체적인 감각’을 타격해야 하며, 시청률을 높(여 더 많은 광고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리모컨을 든 손들의 ‘구체적인 감각’을 마비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감각’의 정점을 우리는 유행어에서 발견한다. “느낌 아니까”라는 말을 듣고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곧장 “센스 없는”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떻게 ‘느낌’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느낌 아니까”를 듣고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감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웃는 자들은 아마 이렇게 핀잔할 것이다. “그걸 왜 설명해?” 과연 그렇다. 설명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인문예술잡지 F』(이하 F)는 어떻게든 설명을, 설명의 필요를 만들어내려 한다. 감각 자체보다는 감각에 대한 설명에서 존재의의를 찾으려 한다. (물론 이것은 [과학적이거나 현학적인] 앎에 대한 욕구와는 구분되어야 하며, 그뿐만 아니라 세계의 웃음을 비난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자.) 그러므로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 ‘느낌’으로 (소)통하는 세계, 웃음과 감탄으로 좋게 마무리되는 세계와 F의 세계는 전혀 다른 질서에 속한다. 설명한다, 고로 F는 존재한다. 혹은 설명하기 위해 감각을 떠나려 한다, 고로 F는 존재한다. 그러나 F가 요청하고 도발하는, 감각에 대해 설명하는 감각, 다시 말해 감각에 대한 의심 — 혹은, 거꾸로, 의심에 대한 감각 — 은 언제나 저 세계의 유행어에 터지는 한바탕 웃음소리에 묻힌다. 게다가 이 웃음소리는 항상 거의 사실에 육박하는 존재감으로 쇄도해오기 때문에 누구든 그것을 믿기도 전에 이미 거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비–존재론적인 이 웃음은 곳곳 — 국회와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골방, 심지어 화장실까지 — 에서 메아리를 얻기 때문이다. 이 메아리들의 난장 속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침묵을 획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실을 참칭하지 않고 끝내 정직한 추측으로 머무를 수 있을까? 이것이 F의 고민이다. “보이지 않는 무대”를 만지고, “도망치는 말들”의 영화를 듣고, “나비의 걸음걸이”를 따라 걷는 이번 호의 글들 역시 같은 고민이 낳은 산물로 보인다. 결국 감각은, 지평(선)을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 (조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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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 감각의 지평(선) The Horizon of Sensation

보이지 않는 무대 (조만수)
감각, 풍경, 그것(들) (하재연)
내면의 시선― 장-뤽 고다르의 <누벨 바그> (클레르 바르톨리)

돌아봄

폐허의 넝마주의들과 흐르는 물(건), 혹은 무한에 대처하는 법
―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아르코미술관, 2013.11.16~30) (곽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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