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Exclusive]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인문예술잡지 F』 편집위원 2인(심보선, 조효원)이 수집과 수집가를 주제로 대담을 나누었다. 대담은 『인문예술잡지 F』 제9호(2013년 4월 30일 발간)에 심보선 시인이 게재한 글을 출발점으로 삼아 진행되었다. 아래는 대담 내용을 녹취, 정리한 것이다. (대담 정리: 백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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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시인, 실패한 수집가, 아니 어쩌면 이미 수집가

 
조효원 오늘 대담의 제목은 ‘시인, 실패한 수집가 아니 어쩌면 이미 수집가’입니다. 『인문예술잡지 F』 제9호의 특집 제목이 ‘만물의 고아원: 수집 그리고 수집가’죠.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이 제목은 실수의 산물입니다. 심보선 시인께서 최근에 신간을 내셨는데요. 제목이 『그을린 예술』입니다. 그 책의 제목 역시 실수의 산물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저도 의도치 않게 실수로 여기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편하게 들으시다가 무심결에 큰소리로 말씀하셔도 되고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하셔도 됩니다. 심보선 선생님께서는 시인으로서 한 번 수집가처럼 뭔가를 수집해 보겠다고 하셨는데, 결국 실패했죠. 하지만 언어를 수집하는 자로서의 시인, 언어수집가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합니다. 수집가가 되려고 하셨으나 실패하셨다고 쓰셨는데, 정말로 실패하신 것인가, 그리고 대체 그것이 실패할 수 있는 실험인지 의문이 들더군요.

심보선 지금 제가 모자를 왜 쓰고 있을까요? 이게 저희 아버지께서 수집하셨던 모자거든요. 저희 아버지께서 수집가셨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수집한 여러 가지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모자인데 살아계셨을 때는 모자들이 잘 진열이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와 저는 모자들을 차곡차곡 겹쳐서 가방에 넣어버렸어요. 수집가라면 물건을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물건을 전시하고, 정리하고, 그걸 보고 ‘아 참 보기 좋다’ 하며 흡족해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와 저는 모자만 생각한 거죠. 그래서 그걸 쌓아놓고 어디다 처박아놔도 ‘모자는 계속 있으니까 아버지께 누를 끼치는 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누를 끼친 거예요. 분류하신 대로, 정리하신 대로, 그럴듯하게 모자를 두고 보면서 아버지께서 느꼈던 기쁨을 저랑 어머니도 느껴야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거죠. 하여튼, 그래서 오늘 모자를 쓰고 왔습니다. 제가 수집가가 되는데 실패한 이유는 이래요. 제게도 나름대로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 있죠. 그런데 한 번도 제대로 정리를 해본 적이 없어요. 분류를 체계적으로 하지도 않았고, 정리를 하지도 않았고, 전시를 하지도 않았고, 그 물건들을 보면서 흡족해하지도 않았거든요. 이번에 그런 걸 한 번 해보겠다고 했는데 결국 실패를 한 거죠. 안 되더라고요. ‘뭔가 수집을 해야지. 어떤 사물을 보고 그 사물에 호기심이 생기거나 어떤 감정이 들면 일단 그걸 가져오자, 모으자’라고 다짐했는데, 아침에 나갈 때는 ‘그래야지’ 하고 다짐해 놓곤 저녁에 돌아올 때면 아예 까먹어요. 내가 그런 체험을 하기로 다짐했다는 사실조차 까먹어요. 이런 걸 두고 발자크가 뭐라고 한 말이 있는데…… 그것도 까먹었네요.

조효원 아버님께서 수집가였다는 사실은 몰랐네요.

심보선 그것도 까먹고 있었어요. 오늘 대담을 준비하면서 ‘이걸 가져가야지’ 하다가 생각난 거죠. 제가 오늘 몇 가지 물건을 가져왔거든요. 곧 아시게 되겠지만 저와 관련된 물건들도 제가 수집한 게 아니에요. 아버지가 다 보관해 두셨던 거지요. 그것도 까먹고…… 다 까먹었어요. 아, 발자크 말이 생각났네요. 수집가란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했죠. 저는 뭔가 수집을 해 보겠다고 침까지 튀겨 가면서 잘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까먹었어요. 제가 열정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를요. 그런 의미에서 실패인 건데, 한편으론 ‘왜 나는 사물에 집착하지 않을까, 왜 이렇게 무심할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 『인문예술잡지 F』 편집위원이신 맹정현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시인이라서 그런 거 아닌가요?’ 그러시는 거예요. 무슨 얘기냐고 했더니 시인에게는 단어가 있지 않냐고, 시인은 단어를 수집하는 사람 아니냐고, 그러니까 언어를 계속 수집해서 그걸 책으로 만들고, 보여주고, 흡족해 하는 것, 그게 시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글의 제목이 ‘시인, 실패한 수집가 아니 어쩌면 이미 수집가’가 된 거죠.

조효원 듣자 하니 단어를 수집하는 것도 다른 시인들에 비하면 그다지 열심히 하신 건 아니라면서요?

심보선 그러게요.

조효원 사실은 수집가적 열정이 없으신 거죠. 시인으로서도 전형적인 시인은 아닌 거죠. 그 발자크 이야기는 『인문예술잡지 F』 9호에 실린 김정아씨의 글 「벤야민의 수집가」에도 나오지요. 심보선 시인께서 수집가의 요건 중 정리를 강조하셨지만 정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수집가의 요건은 정열이거든요. 그냥 정열도 아니고 집요하고 끈질기고 강박적인 정열이어야 하는 거죠. 선생님껜 그게 없으신 거 같아요. 심보선 선생님께서는 자신도 수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수집을 시작하셨는데 시작할 때 이런 고민은 없으셨나요?

심보선 제가 등단한 게 1994년인데요. (책을 꺼내 보여주며) 이게 1994년도 신춘문예 당선 시집이에요. 이게 집에 있더라고요. 이것도 제가 보관해 둔 게 아니라 저희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아버지께서 왜 간직해 두셨는가 하면, 자랑하고 싶어서예요. 아버지께서는 과시하고 싶으셨던 거겠죠. ‘우리 아들이 시인이다’라고요. 1994년에 등단을 했는데 첫 시집을 낸 게 2006년이에요. 열심히 안 썼던 거죠.

조효원 열정이 없었던 거죠. (웃음)

심보선 열정이 있어요. 근데 제 열정은 간헐적이고 시를 쓰는 순간에만 발휘되곤 해요. 시를 안 쓸 때는 단어에 관심이 없어요. 펜을 드는 순간, 그때부터 단어를 막 수집하기 시작하죠. 단어가 안 떠오르면 좌절해요. 떠오르면 너무 기쁘고요. 시를 쓰는 그 순간에, 수집의 열정이 발휘된다는 거죠. 쓰지 않을 때는 관심이 없어요. 저는 평소에 시를 쓰지 않아요. 시와 소설은 좀 다른데 소설은 양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해요. 하루에 두세 시간씩은 써야 되고요. 그런데 시인은 달라요. 안 쓰다가, 갑자기 어느 날 밤에, 새벽에, 두세 편을 휙 써버리기도 해요. 나는 평소에 시를 안 쓰는데 과연 내가 시인인가? 저는 제가 ‘가까스로’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1997년인가 98년부터 거의 5~6년을 시를 안 썼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저를 낯선 사람에게 소개할 때면 시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도 그러셨고요. 그러면 저는 막 손발이 오그라드는 거죠. 굉장히 불편했어요. 시인이라고 불리는 게.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제가 시인이 아니라 ‘시 쓰는 사람’이라고 말해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수집가셨고 또한 제가 시인이라는 걸 과시하고 싶어하신 분이셨어요. 이숙영씨라고 아세요? 그분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등단하신 거 축하드린다고요. 그래서 저는 ‘아, 신문을 보고 전화했나보다’ 했는데,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께서 너무 기뻐하신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직접 전화를 하셨던 거죠. 이숙영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PD한테 우리 아들이 등단했으니 그 녀석을 라디오에 출연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던 거죠. 정말 창피했죠, 그때는.

조효원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인문예술잡지 F』 9호에 실린 심보선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글에서 하이라이트는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죠.

심보선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몇 개 가져온 게 있거든요. 이것들부터 보여드릴게요. (가져온 물건들 가운데 하나를 꺼내 들며) 이것도 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건데요. 이게 뭔지 아세요? 제가 대학 다닐 때 학보사 신문기자로 있었거든요. 이건 1988년도에 찍은 사진의 동판인데 한 번 돌려보시겠어요? (객석으로 사진 동판을 돌린다.) 학보사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교문에서 항상 전투경찰들과 대립이 있었는데, 돌도 던지고 그랬어요. 학보사에 들어간 첫날 그 ‘교문투쟁’ 취재를 나가라는 거예요. 그때 찍은 첫 작품이에요. 교문으로 갔는데 어떤 사람이 최루탄이 자욱한 가운데 혼자 깃발을 들고 서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가고 없었죠. 옛날에는 사진을 찍어 신문에 싣기 위해서는 동판을 만들어야 했어요. 지금이야 다 디지털로 촬영되겠지만요. 이런 동판을 가지고 흑백 사진을 신문에 찍어 냈던 거예요. 이걸 집에 가져갔더니 아버지께서 또 자랑스럽게 보관을 해 두신 거죠. 다시 시와 수집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면, 저는 무심하고 기억도 잘 못하지만 시를 쓸 때 발휘되는 그 집중력이나 에너지는 있다는 거예요. 시를 쓰는 순간에도 그런 게 없다면 저는 정말 시인이 아니겠죠. 시를 쓰는 순간에는 제가 생각해도 집중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한 번은 회의 중에 시상이 떠오른 거예요. 막 시를 쓰고 싶어지는 거죠. 이건 굉장히 육체적인 감각이에요. 들떠요. 어쩔 줄을 몰라요. 그래서 회의 중에 쓰기 시작했죠. 말들이 떠오르고, 단어들이 떠오르고, 그러다 보니 회의에 집중을 못하죠. 결국 어떻게 했냐 하면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하고 회의실 옆방으로 가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썼어요. 그리고 다시 회의에 들어갔죠. 그런데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전화 받는 척 ‘여보세요?’ 하면서 나가서 또 막 썼죠. 온갖 핑계를 대 가면서, 회의 한 시간 하는데 열댓 번을 들락날락 하면서 시를 썼어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회의 끝나고 나서 대체 뭐하는 거냐고, 왜 이렇게 정신이 산만하냐고 야단맞았죠. 그때 쓴 시가 제 첫 시집에 들어가 있어요. 사람들이 좋은 시라고 이야기 하는 시는 아니지만 저는 그때 제가 느꼈던 희열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완성도와 무관하게 제가 아끼는 시예요.

조효원 말씀 듣고 보니 맹정현 선생님과의 대화에서는 일종의 창조적인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심보선 선생님께선 ‘지금 수집을 해야 하는데 실패한 것 같아요’라고 하셨는데 맹정현 선생님께서는 ‘시인은 어차피 말을 수집하는 사람 아니냐’고 말씀하셨다고 했죠. 제 생각으로 맹정현 선생님께서는 심보선 시인의 모습과는 좀 다르게, 항상 시어를 생각하고 항상 단어를 생각하고 항상 강박적으로 언어를 수집하려는 어떤 시인의 전형을 떠올리신 것 같아요. 그런데 심보선 시인께서는 시도 실패한 수집가처럼 쓰시는 것 같거든요.

심보선 수집가라면 그런 강박에 시달릴 수도 있겠죠. 저는 궁금해요. 음, 여기 수집하시는 분 없으세요? (관객 한 명이 손을 든다.) 뭐 수집하세요?

관객1 우표요.

심보선 저도 예전에 우표를 수집했거든요. 우표를 수집해야겠다는 호기심, 에너지, 열정, 그런 게 항상 있으세요?

관객1 돈이 있을 때요.

심보선 아 돈이 있을 때.

조효원 그런데 심보선 시인께서는 구매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정하고 수집을 시작하시지 않으셨던가요?

심보선 네, 그게 제 원칙이었어요.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수집가이기도 했는데, 사실 그는 부자인 동시에 외교관이었어요. 그래서 해외에 나가고 그 나라의 진귀한 사물을 수집할 수가 있었죠. 네루다가 수집한 것 중에는 조개껍데기가 유명하긴 하지만 뱃머리의 조각들도 있어요. 배를 수호하는 천사 같은 거요. 그가 다양한 것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부자이고 외교관이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기존의 수집가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긴 해요. 선수의 조각 같은 건 비싼 건 아니죠. 허름한 것이지만 스스로 맘에 드니까 가져왔던 거죠. 혹은 아비 바르부르크도 동생의 직접적인 후원이 있었기에 수집을 할 수 있었고요.

조효원
구입을 하지 않고 수집을 하겠다는 원칙을 세우셨잖아요. 어떤 면에선 애초부터 실패를 ‘기획’하신 것 같기도 한데요.

심보선 자본이 없는 사람도 수집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있었던 거죠.

조효원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수집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고, 그 때문에 돈이 있는 사람들이 수집가적 열정을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본 사람 중에 스피커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도박보다 무서운 병이었죠. 가산을 다 탕진할 정도로요.

심보선 맞아요. 수집을 하다 보면 낭비가 당연히 수반되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저희 아버지도 그런 경우였어요. 나이가 드실수록 과소비가 심해졌었죠. 모자니 카메라 등등을 수집하셨어요. 과시형 수집가셨어요. 물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거였지만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냥 과소비로 보였어요. 제가 유학 중에 미국에 있을 때는 모자를 사서 보내달라고 하셨어요. 자기가 봐둔 게 있다고요. 그럼 저는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그런 걸 꼭 시켜야 되나, 바빠 죽겠는데’라고 생각했죠. 싸우기도 했고요. 그러면 아버지께선 ‘너는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데 그것 좀 해주면 안 되냐’ 하시고요.

조효원 돈이 먼저인지 열정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네요. 어쨌든 둘 다 갖춰져야 열정이 발휘되는 것 같긴 합니다. 열정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수집을 하고, 할 수 있고, 또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종종 비인간적인 용모를 띠는 것 같아요. 낭비를 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수집가는 그 대상에 함몰 되어버리죠. 건담 프라모델, 우표, 스피커 등 뭐가 됐든 자기한테 중요한 컬렉션을 다른 사람이 실수로 혹은 의도적으로 망가뜨리거나 부수려는 제스처를 취할 때, 수집가가 내비치는 불안이나 적대감이 있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라고 하지만, 심지어는 살인도 저지를 것 같아요. 심보선 시인께서는 그런 비인간적인 정도로까지 치닫는 수집가의 집중력이나 열정에 처음부터 반감을 갖고 계셨던 게 아닐까요? 거기에 저항하셨던 건 아닐까 합니다.

심보선 (관객 1에게) 우표수집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어떠세요? 누가 우표를 찢었다, 그럼 어떨 것 같으세요?

관객1 물론 화가 나죠. 저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요.

심보선 그래서 우표 속에 본인의 자아가 함몰된 것 같아요?

관객1 제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물이니까 아무래도 배려해줬으면 싶죠.

조효원 물론 심보선 시인이나 다른 훌륭한 시인들은 안 그렇겠지만, 시와 관련해서, 맹목적인 우상숭배에 가까운, 맹신에 가까운 자부심과 열정과 정열을 가진 이들이 없지 않거든요. 그걸 더 넓게 문학주의, 문학에 대한 광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텐데요. 심보선 시인께서는 시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럽고, 시도 항상 쓰시는 게 아니지만, 시를 쓰는 순간에는 고도의 열정을 발휘하신다고 하셨죠.

심보선 그 순간에 누가 건드리고 방해를 하면 저도 거의 살의를 느낄 것 같아요. 시 쓰는 순간에요. 시를 쓰고 있는데 누가 와서 방해를 하면 ‘저리 꺼져’라고 하겠죠. 그런데 조효원 선생님의 뭐랄까…… 괴물론, 수집을 하는 사람은 괴물이다, 라는 식의 단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조효원 괴물까진 모르겠지만 수집가라는 걸 극단의 형상으로 그려봤을 때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한 거죠. 심보선 시인께서 시인으로서 수집가 되기에 실패했다고 하셨을 때, 실패라는 단어와 관련해 떠오른 게 있어요. 이번에 나온 황병승 시인의 시집 『육체쇼와 전집』에 「내일은 프로」라는 시가 있어요. 제가 한 번 읽어볼게요. ‘나는 보여주고자 하였지요, 다양한 각도에서의 실패를. 독자들은 보았을까, 내가 보여주고자 한 실패. 보지 못했지……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쓸모없는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불빛 속에서, 아름답게 흐르는 강물을, 다리 위에서, 보고 있었지. 어둠 속에서, 나는 밤낮으로 출렁거리며, 다리 아래서, 보여주고자 하였는데, 괴로워…… 그러게 말입니다. 실패한 자로서, 실패의 고통을 안겨주는 이 페이지에서, 당신들이 수시로 드나들 이 페이지에서, 페이지가 너덜거리도록 당신들과 만나는 고통 속에서, “나는 실패를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네. 이거 이거, 실패를 보여주기에는 역시 역부족이란 말인가. 괴롭습니다, 괴로워요……” 라고 말이지요’

심보선 이준규 시인도 시집 『흑백』에 실린 「향기」라는 시에서 ‘실패의 구축에 실패하다’라고 쓴 적이 있어요. 사무엘 베케트도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라고 쓴 적이 있죠. 이 말은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계속 실패하다 보면, 그러면 더 잘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데요. 이 말 다음에 다음과 같은 말이 이어져요. ‘나쁘게 실패하라. 더 나쁘게 실패하라. 아플 때까지 영원히. 영원히 구토하라. 몸도 장소도 없는 곳으로 영원히 사라져라.’ 사실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오래 전부터 다뤄져왔던 거죠.

조효원 실패에도 계보가 있군요.

심보선 예술가들의 자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성공할 수 없음에 대한 생각…… 실패조차 실패하는 미끄러짐 그런 거겠지요. 그래서 시인들은 계속 실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조효원 그렇죠. 여하간 집중력을 가진 수집가, 정열을 가진 수집가는 어디에 가든 수집의 대상만을 찾죠. 그런데 심보선 시인께서는 그게 나타나기를, 보이기를 기다리는 거죠. 사실 기다리는 것도 아니죠. 그냥 어떤 순간이 있을 뿐이죠. 항상 시를 생각하는 게 아니고, 시를 만나는 어느 순간이 있는 것뿐인 거예요. 파블로 네루다의 말처럼 ‘시가 내게로 왔다’, 그런 것처럼 말이죠. 심보선 시인께서는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정열적으로, 강박적으로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쩌다 마주치는 순간을 포착하는 거죠.

심보선 그런데 지금 그 얘기를 듣다 보니, ‘과연, 그럼 다 우연인가? 모두 다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건가?’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평소에는 무심하게 살다가 영감이 왔을 때 뒤늦게야 열정을 작동시키는지 자문해 보면요. 칸트의 ‘disinterestedness’라는 용어가 있죠. ‘무관심성’, ‘초연함’, ‘사심 없음’ 정도로 번역되곤 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무관심성이라고 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기본적인 태도라는 거죠. 그런가 하면 플로베르는 ‘무관심에 대한 관심’에 대해 말한 적이 있어요. 무관심성이라는 게 사실은 굉장히 열정적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부르주아의 속물성이나 돈을 밝히고 성공하려고 하는 태도 그리고 민중계급의 천박함, 둘 다에 거리를 두기 위해서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태도가 무관심성이라는 거죠. 즉 무관심성의 저변에는 관심이 있어요. 그게 아주 우습게 드러나는 때가 있는데, 가령 모임 같은데 가면 무관심한 척 앉아 있는 사람이 있곤 하잖아요. 사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모든 순간에 ‘쿨’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동하고 있어요. 미숙한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에겐 그런 태도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요. 그러한 무관심을 통해 갖게 되는 행복과 기쁨이 있죠. 때문에 예술가들과 저의 무관심함, 초연함 그 안에는 이미 에너지가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보려고 하는 태도가 저의 삶에, 일상생활에 깔려 있는 거죠. 저는 그런 경우를 자주 겪어요. 글에도 썼듯이 우담바라도 보고…… 남들이 못 보는 걸 자주 봐요. 저는 남들이 저를 볼 때 자꾸 딴 데를 보곤 해요.

조효원 수집가들은 자기가 갖고 싶은 사물에 밀착해야 하죠. 거리가 사라지는 건데 심보선 시인께서는 계속해서 거리를 두고 집착을 하지 않으려고 하죠. 수집가가 대상에 밀착한다면 심보선 시인께선 그와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시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나아가서 정반대의 태도에도 집착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데도 집착하지 않으시는 거죠.

심보선 집착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거죠.

조효원 수집가에겐 수집의 대상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시인이 단어를 수집한다고 할 때 그러한 수집은 통상 수집가가 어떤 사물을 갖거나 모으고자 하는 열정과는 다른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시를 써서 자기 집에 소장하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시를 써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자기가 수집한 단어들을 자기 집에 소장하는 게 아니라 남의 집에 소장하는 셈이죠. 그렇지 않나요?

심보선 남의 집에 있는 걸 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죠. 남의 집에 있는 걸 보고 기뻐하고요.

조효원 자기가 쓴 글에 대해서조차도 거리를 두는 거죠. 사정이 이렇다면, 시인을 단어를 수집하는 수집가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걸 수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심보선 저희 아버지가 저 대신 제 물건을 수집해주셨다고 할 수 있는데요.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그러기를 제가 원했던 건 아닐까 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아버지께서 수집하신 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 아니면 가지고 있을 것인가 생각했어요.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았죠. 아버지라면 이 책을 어떻게 할까, 아버지라면 내 책을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죠. 저는 아버지께서 간직해 두신 제 신춘문예 당선시집을 버리지 못해요. 전 솔직히 이 책을 안 좋아하거든요. 사진도 맘에 안 들고요. 그런데 아들이 시인이라는 것을 과시하고픈 아버지의 속물적인 욕망에 결국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상한 나르시시즘이 생겨요. 달리 얘기하면, 아버지가 저를 자랑스러워하셨던 것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내가 나를 직접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통해서 날 좋아하는 거죠.

조효원 수집에는 소유가 수반되죠. 그런데 심보선 선생님의 단어 수집은 소유가 아닌 거예요. 소유야말로 수집가를 속물로 만드는 거죠. 속물 혹은 스노비즘이라는 테마는 사회학자로서의 심보선 선생님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입니다.

심보선 아버지가 수집하신 컬렉션들을 바라보고, 또 버리지 못하는 저의 마음에는, 비록 아버지의 속물 욕망에 감정이입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거기엔 일종의 애도가 있어요. 애도는 사물을 강박적으로 소유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단어를, 사물을, 세계를 내 가까이 두게 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이러한 애도는 속물적인 욕망과 구별되는 방식으로 인간이 사물과 관계를 맺도록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애도는 우울증과는 다른 것이라고 하는데 우울증은 세계가 내 맘대로 안 될 때 생기는 거래요. 내 친구가 내 기대수준에 못 미칠 때, 세계가 내 기대 수준에 못 미칠 때 분노하고 좌절하죠. 반면 애도는 상실한 것, 잃어버린 것을 받아 안는 거예요. 그것을 인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상실감은 치유로 나아가지는 못해요. 계속 가지고 가야 해요. 상실한 채 사는 거죠. 잃어버렸다, 얻지 못했다, 소유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좌절하는 것은 아니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 상실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예요. 긍정적인 태도죠. 심지어 자기가 잃어버리지 않은 사물이나 사람에게조차도 애도의 감정을 가질 수 있어요. 제 시집 제목처럼, 눈앞에 있는 사람인데도 ‘눈앞에 없는 사람’처럼 관계를 맺는 거죠. 내가 소유하고 있지만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이 구절은 성경에도 나와요.

조효원 이 부분이죠.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고린도전서』 7장 29~31절)

심보선 바울의 말에서 중요한 것은 ‘마치 ~가 아닌 것처럼’이라는 표현이죠. ‘내가 이 사물을 소유하고 있지만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산다는 거죠. 하지만 그건 어떻든 옆에 있는 거예요.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렇게 관계를 맺는 거예요. 그렇게 관계를 맺을 때, 그리고 애도 속에서 관계를 맺을 때 발생하는 감정은 속물적인 것과는 다른 것이겠죠.

조효원 그러면 아버지가 수집하셨던 대상이 심보선 시인께는 아버지의 흔적이 되는 건가요?

심보선 네. 제가 여러분께 보여드린 실물들(책, 사진 동판)은 사실 흔적이에요. 아버지의 흔적이요. 분명 제가 찍은 것이고, 제 시가 담겨있어요. 그럼에도 그걸 간직하셨던 것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저는 그걸 살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어요. 여기서 발생하는 감정은 이런 거죠. 제가 그걸 갖고 있기는 하지만 매개자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대상들과 나 사이에는 항상 거리가 있는 거죠.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가지고 있지 않은 거죠. 왜냐? 아버지가 빠져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의 물건들을 항상 제가 꺼내놓고 보면서 ‘아, 아버지!’ 이러지는 않아요. 가끔 우연히 꺼내들고, 무심코 봐요. 저는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필름도 관리를 안 해요. 보통 사진 찍는 사람들은 사진첩을 만들어서 사진을 보관하잖아요. 근데 저는 이만한 보따리에 그냥 막 넣어두거든요. 그래서 오늘 대담을 준비하면서 창고에 가서 그 보따리를 찾아봤어요. 그런데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인지 사진들이 다들 서로 붙어있더라고요.

조효원 오늘 가져오신 사진들은 그렇게 방치됐던 것들 중에 구제된 것들이군요.

심보선 네. 제가 좋아하는 사진들을 가져왔어요. 먼저 이 사진은 제가 뉴욕에 있을 때 제 방의 창문 밖으로 보이던 성당 사진이에요. 이 성당은 뉴욕에서 제일 오래된 성당인데 계속 공사 중이었죠. 이걸 보는데 내가 잃어버린 시간들, 지나간 시간들이 막 떠오르더라고요. 그 다음 사진을 보시겠어요? 저는 뉴욕에 있을 때 우울증에 걸렸어요. 세상이 내 뜻대로 안돼서 분노하고 있었어요. 그때 한 친구가 저희 집에 가족들과 방문했어요. 이 사진에 보이는 건 그 친구의 딸이에요. 그 아이가 길에서 마리오네트 인형을 사서 가지고 노는 걸 찍은 거예요. 그 후배는 보스턴에 살고 있었는데 저에게 ‘형, 그렇게 살다가는 논문도 못쓰고 폐인 되겠어. 그러니까 보스턴에 와서 나랑 같이 몇 개월 살면서 논문을 써.’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럼 내가 뉴욕을 떠나야겠다.’ 해서 뉴욕을 떠나기 전에 뉴욕을 기억하려고 사진을 막 찍은 거예요. 그 다음 사진을 보시면 제가 정말 좋아하던 벤치가 나와요. 산책할 때면 항상 가서 앉았던 벤치예요. 이 벤치에 앉으면 근사한 풍경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었죠. 나무들이 굉장히 키가 컸어요.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걸 좋아했죠. 사진을 찍으면서 모르는 사람들한테 거짓말을 꽤 했죠. 나는 프로 사진작가인데 잠깐 포즈 좀 취해달라고요. 연락처 주면 보내주겠다고 하고 찍은 거예요. 그런데 안 보내줬죠. 가령, 여기 이 사람은 제가 지나가다가 링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보곤 가서 포즈 좀 취해달라고 한 거예요. 열심히 취해주더라고요. 그리고 뉴욕을 떴어요. 뉴욕을 떠나 보스턴으로 갔는데 보스턴 제 후배 아파트 호수가 34A였죠. 그래서 34A라는 호수도 찍고, 그 집 창밖에 있는 나무가 벽 위에 드리워진 풍경도 찍었어요. 그 후배의 아내는 뉴욕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죠. 주말 부부였던 거죠. 그래서 제가 빌붙어 있을 수 있었죠. 이건 후배가 아내를 역에서 뉴욕으로 전송하며 둘이 포옹하는 걸 찍은 거예요. 너무 애틋한 거예요. 그래서 ‘아, 나도 뉴욕에 있는 여자 친구한테 가야겠다.’ 해서 갔는데 결국 싸우기만 하고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갔죠. 이건 밤에 돌아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찍은 나무 사진이에요. 헐벗고 이파리도 없고 거의 죽은 나무 같았어요. 딱 제 마음 같았죠. 그런데, 지금까지 들려드린 이야기는 보따리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고르면서 지어낸 거예요. 원래 있었던 일이기도 하겠지만, 어쨌건 사진을 꺼내면서 지어낸 거예요. 이 사진들은 창고에 처박혀있었어요. 제가 우연히 꺼냈죠. 그리고 사진들을 골라 배치했죠. 그러면서 제 기억이, 과거가 이 사진들과 더불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졌어요. 그 이야기를 지금 여러분들한테 들려드린 거예요. 이런 식으로 사물들은, 맹정현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말하는 사물들은, 이야기를 가진 흔적들이 되죠.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면 강박적으로 사진에 집착하는 사례가 잘 드러나요. 거기서 리플리컨트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기억이 없어요. 이때 그들이 집착하는 게 바로 사진이에요. 과거를 갖고 싶어서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인간성, 즉 ‘나도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입증하려는 거죠. 그런데 속물들도 그렇죠. 속물들에겐 내면이 없어요. 다만 ‘나도 내면이 있다.’라는 걸 강박적으로, 과소비를 통해 보여주려 하죠. 하지만 다른 방식도 있을 수 있잖아요. 우연히 꺼내든 사진, 우연히 발견한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는 거죠. ‘아, 이런 일들이 있었지.’ 하면서요. 한편으로는 끔찍하죠. 사진은 과거를 잃어버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조효원 그건 그 사물을 구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구매를 통해 사물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는 되팔 수 있을 가능성, 소장가치, 또는 가격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요.

심보선 (관객 2에게) 수집할 때 그런 거 생각하세요?

관객2 제단을 만드는 기분이 드는 것 같기는 해요.

조효원
예컨대 이런 수집가를 가정해 보기로 하죠. 이 사람은 뭔가를 수집하는데 뭘 수집하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오직 자기만 알죠. 제 생각에는 이런 경우에 궁극의 수집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보게 되는 수집가들은 자신의 수집품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었을 그가 ‘대단하다!’고 반응을 보이면 ‘이게 얼마짜리인지 알아? 이걸 팔면 얼마가 나와.’라고, 이런 식으로 얘길 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심보선 시인께서는 구매하는 수집가의 반대편이 아니라 궁극의 수집가의 반대편에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너무 도식적으로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궁극의 수집가들의 수집은 수집이기도 하고 수집이 아니기도 하면서, 제단을 만들려는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것 같아요. 제가 수집의 비인간적인 측면을 얘기한 건 바로 이와 관련해서예요. 수집이라는 게 실제로 궁극으로까지 가면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맹정현 선생님께서도 쓰셨지만 가장 끔찍한 게 연쇄살인이죠. 죽음을 수집하는, 살인을 수집하는 지점까지 가되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거죠. 그런 수집에 비하면 구매 욕구와 결부된 수집은 궁극의 지점까지는 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수집가의 이념이라는 게 있다면 그런 쪽으로 치달을 것 같은데, 돈과 결부된 수집은 그렇게까지는 못되는 것 같아요.

심보선 하지만 사물이 없다면 이야기도 없겠죠.

조효원 사물을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궁극의 수집가 같은 경우에는 그것만 중요해진다는 거죠. 분명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수집과 예술의 경계도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아요. 위험한 말일 수도 있지만요. 궁극의 제단을 만드는 수집가라면 자기가 예술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아무도 하지 못하는 것을, 유일무이한 것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심보선 근대 이전에 예술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죠. 기독교에서는 아름다움, 특히 과도한 아름다움을 배척했고요. 근대 이전의 그림들이 에로스와 신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것도 비슷한 거죠. 예술가들은 ‘악을 통해서라도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겠다.’라는 식의 욕망이 있고 이런 점에서 예술은 세계에 대해 위험할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위험한 거죠. 막스 베버는 삶과 예술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고, 그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했죠. 예술을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해라,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려고 하다가는 예술도 망치고 삶도 망친다는 거였죠. 저는 그 말에 동의하긴 하지만 예술과 삶이 만나는 다른 방식이 있다고도 생각해요.

조효원 그건 제가 보기에는 아까 잠깐 언급했던 스노비즘과 연관되는 것 같아요. 스노비즘이 지나치면 그런 지점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적당히 통제할 수 있는 정도면 과시가 되는 것 같고요. 심보선 시인께서 애초부터 수집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혹은 실패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런 지점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건 심보선 선생님이 시인이자 사회학자라는 사실, 혹은 사회학을 시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심보선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나는 원래 시를 못 쓰는 사람이다. 시는 내 운명이 아니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의 세계에 빠져든 이상 시가 주는 기쁨과 행복에서 빠져나올 수 없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제가 시를 쓰게 된 건 우연이었어요. 시에 대한 취향도 없었고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시집을 읽어 보며 남들이 어떻게 쓰는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고요. 분명 시인이라는 자의식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져요. 선배나 문우들을 통한 학습 과정에서 시인의 자의식이라는 게 만들어지죠. 이 자의식은 중요해요. 이 자의식을 가지고 내가 세계와 싸우는 거니까.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시인이다.’라고요. 강정 시인이 한 말인데 옛날에는 강정 시인이 술에 취해 혼자서 길에 나가도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었대요. 왜냐하면 자기는 시인이니까. 그런 자의식이 사실은 시인의 병이자 동시에 시인을 살게 하는 힘도 되는 거죠. 그런데 저는 그런 사회화 과정과 학습 과정을 한 번도 거치지 않았어요.

조효원 그래서 시인의 자의식을 갖는 데도 실패하셨나요?

심보선 시인이라는 자의식이 없는 자의식이 있다고 얘기한 적은 있어요. 여하튼 저는 이번에 수집가 되기에 실패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단어를 모으는 시인이라는 걸 깨닫고는 ‘그래, 그럼 단어를 한 번 모아볼까?’ 하고 생각했죠. 만나는 사람마다 부탁해서 떠오르는 단어를 말하고 적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머니에게 ‘떠오르는 단어를 말하고 여기에 볼펜으로 쓰세요.’ 했더니 어머니께선 ‘없다.’ 라고, 그렇게 쓰셨어요. 그리고 저는 그걸 받고 ‘됐다. 이 수집 프로젝트는 엄마의 ‘없다.’로 족하다고 생각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