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24 표지

 

 

내용 소개

 

잡지란 무엇일까? 철학자 레지스 드브레(Règis Debray)는 잡지란 “지식 군대가 영토를 조직하는 주된 양식.”이다. 이러한 잡지는 메거진과 달리 고집스러우며 선택한 가치의 명령만을 따르고, 기존의 내용을 뒤풀이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개착하며, 독자수가 아닌 영향력을 추구한다. 또한 잡지는 시의성이 아니라 지속성의 가치에 따라 진정성을 고민한다. 그리하여 좋은 매거진은 일주일 이상 늦어서는 안 되지만, 좋은 잡지는 자기 시대를 몇 십 년 앞서간다. 드브레가 말하는 잡지의 핵심적인 요소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는 마감 시간을 다투는 문제만이 아니다. 더 큰 싸움은 오히려 지금의 시간에 맞서야 하고, 또 앞으로 올 시간을 최대한 오래도록 버텨내야 하는데 있다. 잡지라면 현재의 시류에 어긋나거나 벗어나는, 즉 통념을 거스르는 새로운 의제들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사유될 수 있는 것’의 잠재적인 폭을 넓혀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것은 ‘특정한 발간 시기’에 묶이는 잡지의 생래적 한계를 넘어서는 한편, 미래의 시간이 잡지에 예정해놓은 쇠락의 숙명 또한 견뎌내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번 <인문예술잡지 F>에서는 젊은 비평가들에게 옛날 잡지들을 읽어달라고 부탁해 받은 글들을 특집으로 꾸민다. <공동체문화>, <여성문학>, <시대정신>, <만화와 시대>, <한길영화> – 멀리는 1984년, 가장 가까이는 1991년에 나온 잡지들이니, 평균 잡아 삼십년은 묵은, 잡지라기보다는 차라리 포괄적인 수준에서 도큐멘트(document)-문서, 서류, 기록, 참고자료, 증거자료, 그리고 유물(!)-라고나 해야 어울릴법한 텍스트들이다. 이번호의 특집은 그 도큐멘트에 담겨있는 결기와 전망이 ‘지금’ 어떤 의미로 읽힐 수 있을지, 또 우리에게 어떤 현재적 의의를 가지는지 되새겨본 결과물이다.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을 통해 독자들은, 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공동체의 정치성이라든지, 여성적 글쓰기, 혹은 시각예술의 진보성과 대중성을 ‘잡지’의 형식으로 고민했던 도큐먼트들이 젊은 비평가들의 낯선 시선과 만나면서 어떤 지적 스파크를 일으켰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지금껏 <인문예술잡지F>를 성원해주신 모든 분께 아쉬운 소식 한 가지를 알려야 하겠다. 우리 잡지는 이번 24호를 기점으로 휴간에 들어간다. 정기구독자 여러분께는 이미 공지 드린 바 있지만, 작년 가을부터 올 봄까지 이어진 박근혜 탄핵과 정권 교체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24호의 발간 시기가 한 철이나 늦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간 편집위원들은 잡지의 재편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의 시간을 가졌고, 결국 잡지를 더 끌고 나가기에는 편집진의 내부 역량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 결정에 따른 휴간으로 서운해 하실 많은 독자 여러분께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고 또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나아가 편집위원들은 이 ‘일단 멈춤’의 기간이 무의미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모색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린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현재 단행본 시리즈 <인문예술총서 F>의 발간을 기획 중이기도 하다. 그러니 원래 ‘무크지’로 시작했던 <F>가 곧 ‘계간지’로 변화했듯, ‘잡지’로 7년을 보내고 난 지금 다시 ‘총서’로 변태 중이라고 이해해주셔도 좋겠다. 플랫폼의 형식이야 어떻든지, 비판적 인문예술 담론의 생산을 위한 <F>의 노력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그 미지의 여정에 새로운 세대의 더 많은 독자들, 그리고 필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길 기대한다.

 

차례

 

두드림

F24호를 엮으며_ 이상길

 

고함: 잡지, ()시대적 도큐먼트

1. 공동체와 정치를 함께 사유하기_ 문한샘

2. 천천히, 다양하게- 여성 문학의 다른 실천_ 신윤주

3. 오염된 언어를 거부한다- 『시대정신』(1984~1986) 돌아보기_ 양정애 · 박건

4. 민중만화와 웹툰의 시대_ 구자준

5. 미분화된 영화 글쓰기의 흔적_ 변성찬

 

돌아봄

1. 독립잡지에는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_ 강지웅

2. ‘우리들’ 방의 몇 가지 형태- 디자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독립잡지_ 김동신

3. 독립잡지가 독자를 만나는 장소들_ 정아람

 

말세움

1. 고다르 x 부르디외-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콜라주 드 프랑스》까지_ 이상길

 

부고

1. 존 버거라는 ‘행운아’를 기억하며_ 이기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