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훌쩍 지나갔다. 훌륭한 작업/작품들에 비해 이론이 초라한 상황을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겠다고 시작한 작은 책이지만 이어오는데 어려움이 작지는 않았다. 이번호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20호를 기획하면서 다시 힘을 내 보려고 한다. 아직까지 풍성한 작품 속에서 여전히 이론은 빈곤하고 『인문예술잡지 에프』가 해야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좀 더 현장의 좋은 작품들과 관객, 청중, 독자들을 가깝게 잇는 작업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조금씩 모습을 바꿔가면서 가장 바람직한 위치를 가늠하는 일을 계속 할 예정이다.

이번 호의 특집은 픽션이다. 동시대 예술은 픽션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혹은 구성하는데 실패하는가? 실패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픽션이란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맞닥뜨린 예술이 그 보이지 않는 외부를 가늠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구성물이라면, ‘픽션의 위기’는 외부의 형상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충격에 직면한 동시대 예술의 당혹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곧바로 픽션이란 이제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 폐기할 수 없다. 윤리를 가능케 하는 것은 픽션이며, 픽션 없는 저항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큐먼트와 아카이브(혹은 데이터베이스)는 넘쳐난다. 그러한 것들을 호기심/경이(curiosities/wonder)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들, 전시들, 공연들은 넘쳐난다. 그러한 예술(활동)을 둘러싸고 있는 인문학적 담론과 교사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어떠한 픽션들이 그려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는 이상 그들은 모두 ‘예도락’(art dilettante)에 그칠 뿐이다. 세월호 참사는 사유에 앞서 연대를 요하는 사건이라고 말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그는 충격적인 사건을 앞에 두고 윤리를 가능케 하는 픽션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그 공백을 (그 공백보다도 더 공허한) 도덕과 의무(감)로 메꿀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예술은 사건의 (한복판이 아닌) 곁에서 가능한 픽션을 발견하는 데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픽션은 이론이 상상하지 못하는 여백의 구조를 상상하는 것이다.

예술에서 동시대에 대한 고민은 중요한 요소이다. 예술가는 시대의 아픔을 누구보다 더 빨리, 더 깊게 느끼는 사람이다.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픽션’이 어떻게 ‘현실’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그 공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까지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목차

특집: 픽션

삶에 부딪혀 발생한 형식의 파열_ 이강진
유령적 글쓰기, 또는 허구의 윤리와 사실의 비윤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을 읽으며_ 최진석
터치 마이 바디/터치 유어 바디-세월호의 무대화, <비포/애프터>_ 조만수
생명정치 시대의 예술- 예술작품에서 예술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으로_ 보리스 그로이스·김수환 옮김

리뷰

<해변의 아인슈타인>에 관한 시공간의 단상들_ 서현석

연재

예속의 위험, 자유의 모험-부르디외와 푸코(4)_ 이상길
상주정(喪主政)의 일반공식- 여기의 신정정치(2)_ 윤인로

F19호_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