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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

블랑쇼는 ‘타인의 죽음’이야말로 ‘공동체’의 유일한 근거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후의 경험인 죽음은 스스로를 자신의 ‘바깥’에 내어놓도록 만드는 유일무이한 경험인 바, 공동체는 다름 아닌 죽음에 의해 질서 잡혀 있다. 하지만 기존했던 모든 공동체의 불가능성 위에 구축된 이 심오한 성찰이 공허한 철학적 사변으로 느껴질 만큼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참혹하다. 공통의 바깥을 지향하는 공동체의 가능성이 고립과 폭력의 말들로 얼룩지고, 탈존(ex-sistance)의 체험이 각자의 안전에 대한 근심으로 치환되는 현실 앞에서, 무엇을 가지고 어디서부터 사유를 시작해야 할까? 이른바 ‘재난 이후’의 삶을 둘러싼 여러 성찰들 가운데서 『인문예술잡지 F』는 타인의 죽음을 알리는 최초의 형식에 관해 묻기로 했다. 부고(obituary). 타인의 죽음을 알리는 글이나 행위.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린도전서 11장 26절).

사도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알리는 이 결정적 부고(訃告)는 집요하고 끈질기게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억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그 죽음으로 인해 지상의 삶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선포하는(proclaim)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디우에 따르면,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절대적인 분리’가 존재한다. 그것들의 접합은 어떤 필연성도 내포하고 있지 않은데, 왜냐하면 부활이 사건 그 자체인 반면에 죽음은 상황 속에서의 작용, 사건의 거점을 내재화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적 거점이 존재한다는 것으로부터 사건의 돌발이 곧바로 연역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아직은 사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건이란 차라리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실제의 부활이 아니라면 최소한 구원(redemption)이 되어야만 할 어떤 죽음. 그리고 그 죽음 이후의 남겨진 삶을 사건화하는 첫 번째 자리, ‘부고’를 둘러싼 여러 풍경이 여기에 있다.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비평/이론가였던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가 지난 7월 30일 타계했다. 우리 시대 영화계의 가장 독창적인 세계 하나가 또 그렇게 저물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남수영이 이 죽음을 알리는 부고에 붙이는 개인적인 주석을 보내주었다. “대체 불가능한” 한 세계의 사라짐을 남겨진 자들이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이 글을 통해 함께 곱씹을 수 있기를 바란다. 원격성(Remoteness)과 도덕(Morality)의 관계를 다룬 서울대학교 이두갑 교수의 글은 사람들 사이의 거리(distance)가 인간이 느끼는 도덕 감정과 맺는 흥미로운 관련성을 따져 묻는다. 먼 곳에 있는 타인의 불행과 죽음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볼 수 있는,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안전한 거리와 매개를 수반하는 새로운 감응의 차원은 기존의 도덕성과 연대의식에 어떤 변화를 야기할 것인가. 이른바 ‘재현의 윤리’와 관련된 딜레마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의 기억과 이미지를 재고하는 숭실대학교 박준상 교수의 글은 ‘타인의 죽음’과 마주하는 결정적 지점, 어떤 감정적 고양이나 해소도, 어떤 자기감응도 불가능해지는 ‘무감각’의 문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어떤 언어로도 온전히 가 닿을 수 없는 사건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려는 불가능한 시도. 모든 이념과 관념에 앞서거나 혹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몸의 말’을 통해 마침내 ‘공동성’의 지평으로 나아가려는 저 힘겹고도 지난한 시도를 다시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홍성일 운영위원은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다룬 글에서, 부고란 단지 죽은 자의 부재를 알리는 통지가 아니라 “고인의 삶을 등에 업은 의미화 투쟁의 기나긴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물리적 삶을 마감하는 마침표이자 고인의 새로운 상징적 삶이 시작되는 쉼표로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부고를 받아든 이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결정에 달려 있을 뿐이다.”

연세대학교 이상길 교수의 연재 글「부르디외와 그 동시대인들」은 이번 호에도 계속된다. 세르토와 벤느에 이어서 드디어 부르디외의 가장 중요한 ‘동시대인’이라 할 푸코에까지 이르렀다. 드문 만큼 값진 이런 장기 연재 글들을 『인문예술잡지 F』는 앞으로도 계속 발굴해 이어갈 것이다(다음 호부터 두 편의 연재 글이 새로 추가될 예정이다). 크리스 후지와라의 칼럼과, ‘이미지의 종언’을 다룬 한국종합예술학교 장지한의 글, 문학평론가 조효원의 BOOKEND도 만날 수 있다.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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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 부고(訃告)

하룬 파로키의 눈과 손: 그의 부고에 붙임, 또는 그런 글 (남수영)
타인의 불행과 죽음: 근대사회에서의 원격성(Remoteness)과 도덕(Morality) (이두갑)
죽음과 마주하는 무감각: 광주를 다시 응시하며 (박준상)
부고에 대하여: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다 (홍성일)

부르디외와 그 동시대인들

[연재] 예속의 위험, 자유의 모험: 부르디외와 푸코 (1) (이상길)

말세움

[칼럼] 포스트-전쟁(postwar) 시네마, 포스트(post) 시네마 (크리스 후지와라 · 김보년 옮김) [원문보기]
이미지의 종언에서 종언으로: 쿠르트 크렌의 <15/67 TV>(1967) (장지한)
[BOOKEND]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 · 레프 셰스토프 (조효원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