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두드림

이번 호의 서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모르겠다. 나는 지금 텅 빈 컴퓨터 화면을 띄워놓은 채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다.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차라리 서문답지 않은 서문을 쓰기로 한다. 그저 내 마음의 정황을 고백하기로 한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텔레비전을 보다 갑갑하면 인터넷에 올라오는 소식을 본다. 한숨이 그치질 않는다. 때로는 눈이 뜨거워진다. 참담하고 또 참담하다. 배가 침몰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 그 안에 갇힌 수많은 이들의 생사여부는 여전히 알 길이 없다. 정부의 재난대응 시스템은  시스템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본질을 드러냈다. 그것은 엉성하게 엮어놓은 철사줄 위에 얹은 서커스 천막이었다. 무능력과 관료제의 경직성과 눈치 보기가 덧붙여져 재난 대응은 그저 두려움에 떠는 공무원들의 작용과 반작용의 연쇄로 전락해버렸다. 언론과 정치인은 어떠한가? 그들은 진리와 실천이라는 원칙, 사실 보도와 문제 해결이라는 직무는 내팽개쳐버렸다. 그들은 사건의 와중에 드라마 작가와 드라마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시청률과 득표에 연연하는 미디어 플레이어와 다름없다.

하지만 가족들은 애가 타고 발을 동동 구르고 분노하고 오열하고 절규하고 몇몇은 끝내 쓰러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화’와 ‘침묵’에 대해 어떻게 말을 해야 할 것인가? 나에게 주어진 과업, ‘잡지의 서문 쓰기’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가당키나 한가?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은 모두 사건 이전에 쓰인 글들이다. 오직 나만이 사건의 와중에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이 거대한 사건이 야기한 도저한 감정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상태 그대로 글을 쓸 것인가? 그렇다면 실패는 피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이미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날뛰는 생각과 감정 들을 추슬러 세계와 나 사이에, 그 둘을 벌리는 동시에 연결시키는, 어떤 장소를 기입하고 있다. 나는 지금 장례식장 한켠에서 글을 쓰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무대 위에서 무대 밖의 사건을 곁눈질하며 연기하는 것 같다.

계속해보자. 계속 말을 해보자. 『인문예술잡지 F』의 글들은 말한다. 대화는 하나의 창조적 사건이며, 영화와 연극 속에는 고유의 대화가 녹아 있으며,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들리지 않는 것들이 현현하며 교차한다. 그러니까 대화란, 특히 예술의 대화란 결국 놀이이다. 서로에게 이질적인 것들이, 이미지와 소리가, 내부와 바깥이, 자아와 타자가, 서로 어울리고 겨루는, 규칙을 따르는 동시에 규칙에서 벗어나는, 귀속되는 동시에  해방되는,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이의 이 모든 교환과 교류가 끝난 후 “남는 것은 침묵뿐”인, 그런 놀이이다.

그러나 이 놀이는 얼마나 무력한가? 그 자체로 절대 침묵인 사건(배 속의 사람들은 말이 없다), 그 사건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 사이에 대화를 허락하지 않는 사건, 오로지 사람들을 구조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에 모든 말과 행동이 복무해야 하는 사건 앞에서 예술은 얼마나 무력한가? 어느 시인은 한 언론사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시인은 그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시를 쓸 때가 아닙니다.”

그렇다.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예술은 뒤늦게 도착하는, 뒤늦게 발견되는 목소리 같은 것이다. ‘안네의 일기’처럼, 파울 첼란의 시처럼, 프리모 레비의 회고록처럼. 예술은 언젠가 이 사건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 말은 애도인 동시에 연희인 의례 속으로 사람들을 초대할 것이다. 그 말은 수다스런 대화(과잉)와 영원한 침묵(공백)으로 사건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예술은 한때 넘치는 인파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시간이 흘러 인적이 드물어진 어느 사건의 옆자리에 계속해서, 계속해서 머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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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 대화/침묵하는 예술

‘면접의 말’과 싸워야 한다― 바흐친의 ‘대화주의’에 관하여 (김수환)
에코와 나르키소스, 영화 카메라에게 말 걸다 (나호원)
대화, 말해지는 것과 말해지지 않는 것 (조만수)
침묵 (송승환)

돌아봄

붕괴된 시·공간의 원점을 찾아서― 르네 도말의 『마운트 아날로그』 (이두갑)

부르디외와 그 동시대인들

「부르디외와 그 동시대인들」의 연재를 시작하며 (이상길)
[연재] 미시권력 대 미시저항: 부르디외와 세르토 (이상길)

무대 위의 문학

밤의 폭로 (한유주)
우리가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에서 꿈꾸는 것― “낭독의 발견”으로부터 (성기웅)
쉼표, 마침표.― 한유주 소설 「자연사 박물관」, 「한탄」 (전진모)
소설낭독공연에서의 집합과 응축, 확장에 대하여
― 박솔뫼 단편소설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낭독공연을 위한 연출노트 (강민백)

말세움

[연재] 질서와 폭력 그리고 햄릿― 벤야민–슈미트 논쟁에 대한 스케치(2) (조효원)
[칼럼] 당신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크리스 후지와라 · 김보년 옮김)[원문보기]
[BOOKEND] 세 개의 단편 (발터 벤야민 · 조효원 옮김)